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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 나는 도대체 왜 나로 살아야 했을까

by 굳굿 2025. 3. 25.

인간 실격_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_다자이 오사무

 

아주 오래전에 나는 이 책을 피하려 했다. 너무 유명해서, 너무 절망적이라서,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사람들은 이 책을 ‘자기혐오의 끝’이라고 부른다. 맞다. 그런데 그건 동시에, 이해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가장 정직한 위로이기도 하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요조. 이 세 단어는 하나의 감정으로 연결된다. ‘무너짐’ 주인공 요조는 타인을 웃기는 데 능숙하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어 본 적이 없다. 그는 사람을 무서워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들켜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웃는다. 그 웃음은 자기 자신의 방어막이자 변장인 것이다.

요조는 연기한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을, 집에서는 착한 아들을, 거리에서는 남자다운 사내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가장 인간답게 보일 때가 가장 자기답지 않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1. 진짜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요조가 실격된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실격된 것은 아닐까?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조금만 다르면 ‘이상한 인간’, ‘이기적인 인간’, ‘적응 못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요조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다들 요조인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을 발표한 해에 세상을 떠났다. 작품 속 인물이 아니라 진짜 작가 자신이 세상에 내던져진 마지막 인사,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책장을 넘기면 문장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느껴진다. “웃고 있지만, 나는 울고 있다.” “누군가 나를 알아채면 무서웠다.” “나는 내 존재가 끔찍했다.” 이런 말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웅크린 감정처럼 들릴 때 이 책은 진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2. 너무 솔직해서 불편하고, 너무 정확해서 아프다

『인간 실격』은 서사보다는 고백이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편되고 절단된 기억과 문장 사이의 침묵들이 더 많은 걸 말한다.

읽다 보면 중간중간 멈추게 된다. 한 문장을 곱씹다가 그 문장이 나를 꿰뚫는 걸 느끼고는 다시 책장을 덮는다. 다시 펼친다. 또 읽는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이 치유라고 말하고 있고 또 어떤 독자들은 독이라고 말한다. 나는 둘 다라고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다.

3. 공감이라는 이름의 낙서

요조는 철저히 고립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고립은 독자에게 ‘나도 그래’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 자꾸만 실수하는 자신,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다. 우리는 요조를 연민하면서도 사실은 요조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이미 요조의 일부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묻지 않는다. “왜 그렇게 살았니?” 대신 말없이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속삭인다.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건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공감이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의 내면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인간 실격』은 그런 방식으로 독자와 만난다.

4.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경고하자면, 이 책은 쉽지 않다. 때론 불쾌하고, 때론 지겹고, 때론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만은 다른 어떤 책도 줄 수 없는 ‘치명적인 공감’을 남긴다.

『인간 실격』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낯선 책일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친구가 된다. 아니, 때로는 대변인이 되고, 거울이 되고, 흉터를 어루만지는 친구가 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조용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실격된 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 뒤에는 내 안의 구석진 감정이 허락받은 것처럼 이상한 해방감이 따라왔다.

5. 마무리

『인간 실격』은 당신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외면하고 있던 감정을 억지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말없이 앉아서 그 감정과 함께 있어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책, 그게 바로 『인간 실격』이다.

우리의 삶이 조금씩 비틀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은 좋은 ‘잠수복’이 될 수 있다. 아주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천천히 올라오기 위한 준비물이지 않을까?